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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열전 20] 국제적 논란 부른 모사드의 두바이공작(上)

아무리 노크를 해도 인기척이 없었다. "방해하지 마세요"라는 카드도 문고리에 걸려있지 않았다.

호텔 룸메이드는 짜증이 났다. 손목시계는 벌써 오후 1시 20분을 가르치고 있었다. 교대할 시간이 다 됐는데도 안에서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230호실 고객은 전날 체크인한 후 잠시 외출했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고 동료가 귀띔했다. 시리아인으로 보이는 40대 후반의 고객은 잘 생긴 편이고 독특하게 발코니가 없는 이 방을 찾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기다리다 지친 룸 메이드는 하는 수 없이 비상 열쇠를 문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안에서 잠겨 있는지 열리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보안요원의 도움을 받아 방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살해된 마흐무드 알마부흐의 사진을 든 팔레스타인 주민들 ⓒAP=연합뉴스

투숙한 남성이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의식이 없는 것을 알아차린 보안요원이 응급처치에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침대 옆 서랍 위에는 조그만 약병이 놓여 있었다.

2010년 1월 20일 오후 1시 30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알부스탄 로타나호텔에서 발견된 시신의 신원은 곧 밝혀졌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군사조직 하마스의 고위간부 마흐무드 알마부흐였다.

왜 살해됐는지, 누가했는지도 머지않아 드러났다. 이스라엘 대외정보국인 모사드에 의한 '제거공작'이었다. 그러나 알마부흐 사건은 스파이 세계에서 여전히 논란거리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모사드의 '명성'과는 걸맞지 않게 26명이나 되는 용의자들의 신원이 이내 밝혀진 데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전통적인 우방의 주권을 침해했다는 비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군 살해주범으로 20년간 도망자 신세…모사드, 드론 공격·독살시도

모사드에 살해된 알마부흐는 1962년 2월 이스라엘 점령지인 가자 지구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한때 역도선수를 꿈꾸던 그는 하마스에 가입, 본격적인 반(反)이스라엘 무장투쟁에 나섰다.

네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AK-47 자동소총을 가방 안에 넣고 다니다가 이스라엘군에 적발돼 1년 동안 철창신세를 졌다. 출소 후 알마부흐는 갓 출범한 하마스에 가담했다. 하마스의 특수부대인 '101부대'에 배속된 그는 네게브 사막에 주둔하는 이스라엘군 암살을 지시받았다.

1989년 5월 알마부흐는 동료와 함께 정통 유대인 복장으로 네게브 사막 지역에 잠입, 두 명의 이스라엘군 병사를 납치한 후 살해했다. 두 사람은 피살된 병사들 위에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사건 직후 그는 가자지구로 숨어들었으나 포위망이 좁혀오자 이집트로 다시 도망쳤다. 그의 잠입 사실을 안 이집트 당국은 애초 재판에 회부하거나 이스라엘로의 추방을 놓고 고심했다. 그러나 어느 것이라도 자칫 반정부 성향의 조직인 '무슬림 형제단'을 자극해 대규모 봉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리비아로 추방했다.

▲이스라엘 공격용 로켓을 운반하는 팔레스타인 하마스 대원들 ⓒAP=연합뉴스

리비아로 피신한 알마부흐는 하마스 조직과의 연계가 쉬운 요르단으로 은신처를 옮겼다. 그러나 요르단 정부의 하마스 지도부 추방 조치로 또다시 추방돼 시리아로 거처를 바꿨다.

시리아에서 그는 이란 혁명수비대 측과 접촉해 2차 무장봉기에 필요한 자금과 장거리 로켓 등의 무기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활약에도 불안감은 떠나지 않았다. 불안은 이내 현실로 나타났다. 그의 목숨을 노리는 이스라엘 방첩 당국의 추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2009년 2월 수단에서 여행 도중 그가 탄 트럭 등 차량 대열에 이스라엘 비밀정보국 모사드 소속으로 추정되는 드론이 공격을 가해왔다. 당시 트럭에는 이란제 로켓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는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졌다.

모사드의 비밀공작단인 키돈(Kidon) 요원들은 그를 독살하려는 공작도 시도했다. 이 와중에도 그는 중국, 이란, 시리아, 수단, 아랍에미리트 등을 수시로 여행했다.

최소 두 차례의 암살 시도에 실패한 모사드는 이제 다른 방도를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가 수시로 해외출장을 떠난다는 점에 주목한 모사드는 공작 대상지로 두바이를 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루 평균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두바이 국제공항을 이용하기 때문에 현지 보안 당국의 감시망을 비교적 쉽게 따돌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서울=연합뉴스) 김선한 기자

연합뉴스  sh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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