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종교 개신교
총회임원회, 최태영교수 이단상담소장 인준거부최태영교수, "이명범은 이단 아니다"

총회임원회가 이대위에서 만장일치로 이단상담소장으로 추천한 최태영교수의 인준을 거부했다. 특히 부총회장도 적극 반대를 했다고 한다. 이는 최근 최태영교수가 쓴 논문이 총회정책과 달리 사면자들에 대해 호의적인 판단을 한 사람을 지지했기 때문에 이단상담소장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교회와 신앙은 영신대 이사회에 최태영교수에 대한 징계까지 요청했을 정도이다.

이미 이명범에 대해서는 99회 총회시 이대위에서 이단이 아님이 결론이 났고, 100회 총회 이대위와 사면위에서도 이단이 아님을 결론 내렸다. 기장측에서도 이단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그의 교회를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독 통합교단에서만 이단으로 매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최삼경의 영향때문이다.      

이성희 총회장은 자신이 100회 이대위에 참석하여 사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주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범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글을 썼다고 하여 최태영교수를 이단상담소장으로 임명하지 않는 것은 신학적 판단이기 보다는 정치적인 판단일 수가 있다.

더군다나 사면파동이 나기 전에 학자로서 양심을 갖고 학문적으로 논문에 글을 게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의 말만 듣고 임원회가 이단상담소장의 인준을 거부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최교수는 2015. 5월 신학과 목회라는 저널에서 "이단이 교회에 끼치는 해악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이단 연구를 철저히 해야 함과 아울러, 이단연구는 복음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바르게 하지 않으면 수많은 영혼을 파멸시키는 결과에 이를 수도 있음을 느끼고 대단히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필자는 이명범 씨의 문제를 자세히 연구하고자 한다"고 했다.

최교수는 이명범이 김기동목사가 이단으로 규정되기 이전에 베뢰아 공부를 했는데 1992년 김기동목사와 동시에 매도되었다고 주장한다. 법적으로 말하면 행위시법주의와 소급효금지원칙에 벗어나는 것이다.

행위시법주의(行爲時法主義)란 행위시와 재판시 사이에 형법 법규의 변경이 있는 경우에는, 행위시의 형법 법규를 적용하여야 한다는 태도를 말한다.

형법 제1조(범죄의 성립과 처벌)는 "①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한다. ② 범죄후 법률의 변경에 의하여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거나 형이 구법보다 경한 때에는 신법에 의한다.③ 재판확정후 법률의 변경에 의하여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형의 집행을 면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급효금지원칙에 벗어난다는 것은 당시 1992년 이전에는 김기동목사는 이단이 아니었는데 나중에 이단이 되었다고해서 소급해서 적용하여 이명범을 이단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법적인 무리가 있는 것이다.

이명범목사를 이단으로 정죄하기 위해서는 김기동목사가 이단으로 정죄된 이후, 이를 알고 그 밑에서 배웠다면 이단성이 있거나 이단으로 해야 하지만 이단으로 정죄되기 이전에 배운 것만을 갖고 이단으로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최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김기동은 한국 기독교의 여러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된 자이므로 이명범 씨가 김기동 씨로부터 정규적인 가르침을 받았다면 이단성에 관해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구가 이루어진 것이 1992년 총회 이전이라는 것을 살핀다면 이 연구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즉 ‘이단자 김기동’이라고 한 것이다."

"아직 김기동은 이단으로 규정되지 않은 시점인데, 이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이 김기동을 벌써 이단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은 석연치 못하다. 그리고 이명범이 김기동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고려할 사항이지 그것으로 김기동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씨를 이단으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김기동 씨와는 별도로 그녀의 가르침 자체에 이단성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윤리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도 최교수는 더구나 간통 사건이 유죄로 인정되지 않은 이상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는 "간통사건의 사실유무와는 별개로 이것은 이단성과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간통은 윤리적인 지탄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간통이 이단의 충분조건인 것은 아니다. 더구나 간통 사건이 유죄로 인정되지 않은 이상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양태론에 대해서도 최교수는 "김기동 씨나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의 삼위일체론이 양태론이라는 것이 누구나 인정되는 보편적 사실인지 여부가 일차적인 문제가 될 수 있고, 또 그렇다 할지라도 이런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씨의 삼위일체론이 김기동 씨나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의 것과 꼭 같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인데, 김기동, 이초석, 이태화 등과 이씨와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양태론자라고 결론내리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판단한다. 최교수는 이명범씨가 언어표현에 있어서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이명범씨는 신학적으로 미숙함이 있었다고 인정한다.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그녀는 초기에 신학적 부족과 용어 사용의 미숙으로 양태론적으로 비판 받았으나, 이후에 그것을 깨닫고 정통적 삼위일체론을 믿고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 신문을 통해서도 웨스트민스터 삼위일체 신앙고백과 이종성박사의 삼위일체론을 믿고 따른다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이명범씨가 삼분설을 주장한 것만 갖고서 이단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삼분설은 기독교 신학에서 주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단으로 규정할 것도 아니다."

성경관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신비주의로 보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성의 한계에 대하여 서술한 것이지, 이성의 무용이나 신비주의적 해석을 가르친 것으로는 볼 수 없다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반이성적, 신비주의적 이해라는 비판은 적절한 비판으로 보여지지 않거니와, 그런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그 정도에 있어서 이단으로 규정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고 판단된다."

그는 결론적으로 1992년의 이명범 씨 이단규정에 있어서 눈에 띄는 문제는 1) 사실 확인에 있어서 오류가 있다. 2) 당시에 이단으로 확정되지 않은 김기동 씨와 연관이 있다 하여 이단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결론으로 몰아간 정황이 있다. 3) 사소한 교리적 차이를 지나치게 부각시켰다. 4) 윤리적으로 접근한 정황이 있다. 5) 형평성에 있어서 균형을 잃은 정황이 있다. 6) 살리기 보다는 정죄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단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1) 사실과 드러난 증거에 입각하여 판단할 뿐, 주관적 추론에 근거하여 판단해서는 안 된다. 2) 정치적, 윤리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고, 오직 성경과 교회의 정통적인 교리에 입각해야 한다. 3) 사소한 교리의 차이에 집착하기 보다는 구원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중추적인 교리에서 보편 교회가 용인할 수 없는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4) 비록 어느 정도 문제가 드러난다 할지라도 율법적으로 정죄하고 죽이기보다는 복음적으로 살리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이렇게 쓴 글에 대해 총회임원들은 최교수는 이단상담소장이 왜 부적격한지, 민중신학을 갖고 논문을 쓴 구춘서교수는 왜 이단상담소장으로서 적절했는지를 말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총회임원회는 학문적으로 논문을 쓴 학자는 버리고 교단신학에 벗어난 민중신학자의 이단상담소장 은 지지한단 말인가? 

최교수가 쓴 논문을 보자. * 이 논문은 2016년 5월에 출간된 <신학과 목회>에 게재되었다. 

이명범 씨에 대한 이단 논쟁

교수 최태영(조직신학)

 <목차>

I. 여는 글

II. 이명범 씨 이단 결의와 그 이후의 과정

III. 논쟁의 주제들

1. 개인적 문제

2. 삼위일체론

3. 창조론

4. 인간론

5. 성경관

6. 종합 및 연구결론

IV. 평가 및 제언

<Abstract>

I. 여는 글

2015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총회(이하 총회)에서 이명범 씨와 레마선교원에 대한 이단해지의 건이 많은 토론 후에 1년간 더 연구하기로 결의되었다. 총회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주류 개신교단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저명한 이단 집단들 외에도 수십 개에 이르는 집단들을 이단 내지 사이비성이 있는 집단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런데 이단 규정에 있어서 불복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다가 교단 및 연합기관 사이에도 이단에 대한 의견의 차이로 인하여 분열 내지 파행에 이르게 되는 등, 이단 문제가 한국 개신교회 내에 적지 않은 혼란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명범 씨의 건도 그 중의 한 사례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필자는 다년간 이단 문제에 관여한 경험에 근거하여 총회의 초미의 관심으로 부상한 이명범의 건에 대하여 자세히 연구함으로써 교단과 한국교회의 이단 문제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조금이나마 이바지함이 있기를 기대한다.

이단 연구는 교회의 교리적 혼란을 바로잡아 신자들의 신앙을 구원의 바른 진리 위에 견고하게 세우며, 이단 또는 사이비 교설이 교회 안에 뿌리내리지 않도록 방비할 뿐만 아니라, 간혹 억울하게 이단으로 정죄된 자가 있다면 그 억울함을 풀어줌으로써 교회 안에 정의를 세움으로써 하나님나라의 역사에 기여하는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학의 임무와 목적이 바로 이런 것이므로, 이런 의미에서 이단 연구는 신학자들이 피할 수 없는 임무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정통적인 바른 신학, 바른 교리는 이단과의 투쟁에서 나온 것임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단 연구가 바르게 되지 않으면 예수께서 우려하셨던 바처럼, 알곡이 가라지로 오인되어 뽑혀나가는 안타까운 일도 적지 않게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와같이 이단연구의 필요성과 위험성을 아울러 깊이 인식하는 가운데 이명범 씨의 문제가 근래 한국교회의 이단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으로 생각되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즉, 이단이 교회에 끼치는 해악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이단 연구를 철저히 해야 함과 아울러, 이단연구는 복음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바르게 하지 않으면 수많은 영혼을 파멸시키는 결과에 이를 수도 있음을 느끼고 대단히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필자는 이명범 씨의 문제를 자세히 연구하고자 한다.

이명범 씨에 관한 연구의 방법은 총회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와 이단 연구가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를 수합하여 자세히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명범 씨의 가르침과 주장을 사실에 근거하여 자세히 규명하고, 특히 이명범 씨를 비판적으로 연구해 온 모든 자료들을 자세히 검토함으로써 진실 규명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두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자료 중 상당수는 주관적이고 감성적 추론이나 해석이 지나치게 강한 반면 그 사실성, 진실성을 신뢰할 수 없어서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리한 후에 보니 자료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어쨌든 확보된 자료들을 통하여 연구를 진행하되, 성경 말씀과 교회의 바른 교리에 입각하여 이명범 씨의 가르침과 주장에 이단성이 얼마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II. 이명범 씨 이단 결의(1992년)에서 재심(2015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1992년 총회는 이명범 씨와 그가 운영하는 레마선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당시 총회가 ‘사이비신앙운동 및 기독교이단 대책위원회’의 보고 가운데, “이명범씨(레마선교회)의 이단성 연구보고서”(이하 ‘보고서’라 칭함)를 그대로 통과시킴으로써 이명범 씨는 이단으로 결의된 것이다. 그 후 이명범 씨와 레마선교회는 몇 차례에 걸쳐 총회에 재심을 요청하였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이명범 씨는 1992년 총회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될 조짐이 보이자 그해 9월 레마성서연구원 회원(일동)으로 이단 시비가 있는 문제에 대해 직접 변호할 기회를 달라는 내용으로 총회에 청원서를 올렸다. 그 청원서의 내용을 대략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저희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저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창조되었음을 믿고 있습니다. ... 귀 교단의 모든 교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 이렇게 레마(레마성서연구원)에서 성경공부 한 회원이 현재 1만여명 정도입니다. 행여나 귀 교단의 결정이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서운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재삼 간곡히 청원합니다. “이단 시비가 있는 문제에 대해 직접 변호할 기회를 주시기를 청원합니다. 세상 법정도 변호의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영원한 생명의 문제가 걸려 있는 중요한 일이기에 저희의 답변도 들으시고 결정해 주실 것을 청원합니다. 한 영혼도 살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시어 변호의 기회는 반드시 주어져야 함을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이 청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00년 4월, 레마선교회 회장이자 예일신학대학원대학교 이사장 이명범 명의로 예장(통합) 총회장에게 2차 청원서를 보냈다. 청원서의 내용은 몇 가지 교리에 있어서 표현의 미숙으로 성경 및 정통 교리에 맞지 않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그것을 곧 수정하였으나, 예장(통합)이 수정 전의 자료를 가지고 이단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며, 예장(통합) 교리와 차이가 없으므로 이단규정을 철회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청원서의 내용 일부분은 다음과 같다.

 

저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저 나름대로 성경을 공부하면서 말씀을 전하는 중에 한 때 창조론, 삼위일체론 등 몇 가지에 대하여 표현의 미숙으로 성경 및 정통 교리에 맞지 않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그것을 곧 수정하였으나 수정 전의 자료를 가지고 이단으로 규정했습니다. 본인이 창조론에서는 “이중 아담론”을 주장했다는 것이고, 삼위일체론에서는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을 주장했다고 지적되어 있습니다. 그 후로 현재까지 귀 교단의 신조 및 신앙 노선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 교단에서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이전의 사실로만 판단하여 1992년 총회에서 저희 레마선교회를 이단으로 결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그 때에 총회 직전에 제가 이전의 성경 강해 시 신학 부재와 표현 미숙으로 “정통교리에 맞지 않다”는 오해를 일으킨 것을 사과하며 관용을 구하고, 그 사실에 대하여 해명할 기회를 주시기를 별지와 같이 청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귀 교단에서는 이미 총회 안건의 접수가 끝났다는 이유로 저의 청원을 받아 주지 않고 그것을 반려하셨습니다. ... 아직도 저의 신앙과 교리 문제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본인이 귀 교단의 신조와 신앙을 따르고 있음을 밝히며, 아울러 예일신학대학원대학교 신조와 교육철학, 그리고 예일신학대학원대학교 요람을 동시에 제시하면서, 다시 한 번 저의 신앙 노선이 귀 교단의 정통교리와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천명하는 바입니다. ... 존경하는 총회장님, 이상으로 귀 교단과 저 사이에 지난날에 있었던 일을 아뢰고 필요한 증빙 서류를 제출하오니, 신중히 검토하시고 그것들로서 충분하시면 이번에 귀 총회가 결의한 것에 대하여 철회하여 주시기를 다시 한 번 청원하는 바입니다. 만일 이번에 제시하는 자료로도 불충분하다고 인정되셔서 어떠한 지시나 문의를 하신다면 언제든지 기꺼이 응할 것도 아울러 말씀드리며, 귀 총회의 신조 및 신앙 노선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이 청원서와 함께 첨부한 예일신학대학원대학교의 신조에는 이단규정과 관련된 것들이 들어 있다. 삼위일체론이 그중의 하나다. 신조 제 6조에 삼위일체라는 제목 하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성부, 성자와 성령은 그 본질에 있어서 다 같은 하나님으로서 그 영광과 권능과 위엄에 있어 동일하시며, 한 본체가 세 가지 양태로 나타나시는 분이 아니라, 단지 각기 독립된 위격을 가지고 사역하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이것은 그들의 삼위일체론이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이 아니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2차 청원서 역시 총회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0년 6월 서울 강동노회장의 ‘이명범씨 이단결정에 대한 질의’에 대하여 “이미 이명범 씨가 제 77회 총회(1992년)에서 이단에 규정된 바 있음”으로 통보하기로 하였다(85회 총회 회의록).

2003년 총회로부터 수임된 연구안건인 ‘예일신학대학원대학교 관련자 및 레마선교회(이명범)에 대한 재연구’를 연구분과위원회로 위임하기로 결의하였으나, “레마라는 명칭을 버리기 전까지는 재연구하지 않기로 한 연구분과의 결의”를 받기로 하였다(88회 총회 회의록).그후 2004년에는 레마선교회 관련 금품요구설에 관한 조사보고가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후인 2014년 7월 4일자로 총회로부터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에게로 처리하기를 요청하는 첨부서류가 이첩 되었는 바, 첨부서류는 이명범 씨가 제출한 “이명범 목사의 이단해제에 대한 재심 청원의 건”이었다. 또 김창영 목사가 “이명범 목사 이단해지 및 재심청원의 건”이란 제목으로 총회에 청원한 문건과 자료가 2014년 8월 1일자로 총회 서기로부터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에게로 이첩되었다. 2015년 2월 6일자로 이명범 씨가 소명자료를 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이하 이대위)로 제출하였고, 동 위원회에서 재심하기로 결의함에 따라 77회 총회(1992년)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이명범 씨와 레마선교원에 대한 재심을 위한 연구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 재심을 위한 연구는 진행 과정에서 이대위 연구분과의 소속 위원들 사이의 이견으로 인하여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대위 본회의에서 투표까지 가는 과정을 통하여 이단해지 결의를 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이단사이비문제연구소 상담소장이 즉각 사표를 제출하고, 3인의 상담원이 동반 사표를 제출하고, 총회장 명의로 이대위 위원장에게 이명범 씨의 건은 총회에 상정하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서가 발송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2015년 총회에 ‘이단해지’라는 취지의 연구결론이 기재된 연구보고서가 보고되었다.그러나 총회 본회의에서 그대로 통과되지 않고 난상토론 끝에 1년간 더 연구하는 것으로 결의되었던 것이다.

총회에서는 결국 1992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이명범 씨에 대한 이단관련 연구를 한 셈이다. 이 두 번의 연구보고서를 주된 자료로 하여 이명범 씨에 대한 이단 논쟁을 자세히 살펴보고, 아울러 이단 규정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원칙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자 한다.

III. 논쟁의 주제들

필자는 1992년 통합총회의 회의록에서 출발하여 2015년까지 되어진 일을 자세히 검토하여 바람직한 결론을 도출해보고자 한다. 1992년 회의록에 의하면 이명범씨의 이단성은 5항으로 나뉘어 적시되고, 제6항에서 이단으로 연구결론을 내었다.그 연구내용을 따라가며 항목별로 검토하고자 한다. 검토하는 방법은 먼저 1992년 총회 결의 내용을 확인한다. 다음으로 그 내용을 분석하고 사실 확인을 거친 후, 이명범 씨의 해명과 대조한다. 마지막으로 성경과 교회의 신학 전통에 따라 평가한 후 2015년 총회 보고서와 비교함으로써 각 항목을 정리한다. 결론 부분에 이르러 전체를 종합하여 평가하고자 한다.

1. 이명범씨의 개인의 문제점

1992년의 ‘보고서’에는 이명범씨의 개인의 문제점이라는 소제목 하에 그녀의 학력과 1981년에 레마선교회란 단체를 창설하여 성경을 가르쳐 온 것, 트레스디아스(Tres Dias)와 비다뉴바(Vida Nueva)를 도입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것, 특히 그녀가 만든 ‘렘(rem)'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많은 물의가 일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명범 씨의 이단성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판단된다. 그녀가 다닌 학교와 이단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레마선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쳐 온 것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또 어떤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세력을 확장하는 것도 역시 이단성과는 관련이 없다. 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생겼다고 하는 물의가 무엇인지 적시되지 않은 이상 그것도 이단성과 연관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본다. 이단성이 있다고 하려면 이단성에 관련된 사실적 증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고서에 있는 위와 같은 지적은 이단성을 논하는데 있어서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명범 씨의 개인의 문제점으로 적시된 사항을 살펴보자. “이단자 김기동 씨가 운영하고 있는 베뢰아 아카데미 1기생으로서 1980년 5월 10일 39명과 함께 졸업식을 가졌으며, 그녀의 가르침의 많은 내용이 베뢰아의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데도 그녀는 이를 부정하는 것이나, 평신도인 자신이 많은 안수를 하면서도 안수를 하지 않는 것처럼 하는 점이나, 심지어 레마의 핵심인사와의 간통으로 고소되었다가 취하된 바가 있는 등 많은 문제점을 개인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다.”

이 부분은 이명범의 이단성에 관하여 논의할 여지가 어느 정도 있는 부분이다. 몇 가지를 나누어 지적해야 하겠다. 첫째, 김기동 씨의 정체 및 그와의 연관성, 둘째, 이명범의 가르침의 많은 내용이 베뢰아의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지의 여부, 셋째, 이명범이 평신도로써 안수를 했는지, 그리고 그 안수는 어떤 안수였는지에 대한 것, 넷째, 간통사건에 대한 것이 그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각각 살펴보자.

첫째, 김기동은 한국 기독교의 여러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된 자이므로 이명범 씨가 김기동 씨로부터 정규적인 가르침을 받았다면 이단성에 관해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구가 이루어진 것이 1992년 총회 이전이라는 것을 살핀다면 이 연구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즉 ‘이단자 김기동’이라고 한 것이다.

아직 김기동은 이단으로 규정되지 않은 시점인데, 이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이 김기동을 벌써 이단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은 석연치 못하다. 그리고 이명범이 김기동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고려할 사항이지 그것으로 김기동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씨를 이단으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김기동 씨와는 별도로 그녀의 가르침 자체에 이단성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둘째, 이명범의 가르침과 베뢰아의 사상이 일치된 부분이 많다면 이단성을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베뢰아 사상이 전부 다 이단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이명범의 가르침에 베뢰아 사상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하여 이명범을 이단이라 할 수는 없다. 이명범의 가르침의 내용 가운데 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는지, 그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셋째, 안수 문제에 있어서, 이명범이 어떤 경우에 누구에게 안수를 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다. 평신도가 목사에게 안수했다면 교회의 질서 또는 정서상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안수할 수 있는 자격을 규정하고 있는 특별한 말씀이 없다면 안수를 했다는 사실을 이단과 연관시키는 것은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넷째, 간통사건의 사실유무와는 별개로 이것은 이단성과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간통은 윤리적인 지탄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간통이 이단의 충분조건인 것은 아니다. 더구나 간통 사건이 유죄로 인정되지 않은 이상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또 이명범이 자기의 가르침의 많은 내용이 베뢰아의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부정할 경우, 그것은 이명범의 도덕성의 문제이지 이단성과 연관시킬 일은 아니다.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이단이라 할 수는 없다. 이단이 아닌 자들도 거짓말을 많이 하고 사실상 거짓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범이 안수를 하면서도 하지 않는 것처럼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단성과 연관지을 문제는 아니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하자가 있다고 하여 이단이라 한다면 세상에 이단이 아닌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2015년의 연구보고서[이하 보고서(2015)]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한 항목으로 묶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기타 삼분설 김기동 씨와의 연관성, 인격에 관한 부분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으나 이단성을 논하는데 있어서 유의미한 하자로 특기할 만한 것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김기동 씨와의 관련성에 있어서는 그가 이단으로 규정되기 전에 우리 교단의 저명한 목회자들도 김기동 씨로부터 배운 바가 있으므로, 어떤 이단적인 사상을 지속적으로 주장하지 않는 한 하필 이명범 씨만을 문제삼는 것은 형평성에 있어 어긋나는 일이기도 하다.

 

2. 삼위일체의 문제점

‘보고서’에는 이명범의 삼위일체론적 문제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씨의 삼위일체론은 김기동 씨나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같은 것으로서 곧 양태론이다. 이씨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예수라고 하며,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은 예수라는 하나님 따로, 여호와라는 하나님 따로 있는 신이 아니라고 한다(이명범, 믿음생활을 위한 출발, p. 209). 이는 김기동 씨의 아류인 이초석씨와도 같은 주장이며, 또 하나의 아류인 이태화씨가 쓴 책(조직신학 3권, p. 125)에 있는 내용과 똑같은 것으로 인격을 하나로 보는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이다. 이씨가 1981년 8월 24일에 강의한 내용에 의하면 성부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질이요, 성자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체요, 성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영이라고 하였는데, 이 본질, 본체, 본영이라는 말은 김기동씨가 만들어 낸 전문용어이다(최삼경, 베뢰아 귀신론을 비판한다, p. 47). 그러므로 이씨의 삼위일체론은 우리의 전통적 삼위일체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위 내용은 다음과 같은 쟁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씨의 삼위일체론이 김기동씨나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처럼 양태론인지 여부, 둘째, 이씨의 삼위일체론이 교회의 전통적 삼위일체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지의 여부가 그것이다.

첫째, 이명범의 삼위일체론이 양태론인지에 대하여 판단하는데 있어서 이미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들과 직접 연관시키는 접근법은 쉽게 이해되는 장점은 있을지라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정죄된 그 사람들과 똑같은 사상이라고 단정하는데는 또 다른 증거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고서에는 이씨의 삼위일체론이 양태론이라는 근거로 몇 가지를 들고 있는 바, 그 중의 하나는 김기동 씨나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같다는 것이다. 김기동 씨나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의 삼위일체론이 양태론이라는 것이 누구나 인정되는 보편적 사실인지 여부가 일차적인 문제가 될 수 있고, 또 그렇다 할지라도 이런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씨의 삼위일체론이 김기동 씨나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의 것과 꼭 같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인데, 김기동, 이초석, 이태화 등과 이씨와 연관이 있다는 이유로 양태론자라고 결론내리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둘째, 이명범의 삼위일체론을 양태론이라고 판단하는 주된 근거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그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예수라고 하였다는 것,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은 예수라는 하나님 따로, 여호와라는 하나님 따로 있는 신이 아니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양태론으로 의심받을 소지가 있다. 양태론은 성부, 성자, 성령이 본질에서뿐만 아니라 위격적으로도 하나라고 하는 사상으로서, 위와 같은 이씨의 주장은 성부, 성자, 성령을 한 위격으로 본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 점에 있어서 이명범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적인 요소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셋째, 이씨는 김기동씨가 만들어낸 전문용어를 사용했는데, 즉 성부는 하나님의 본질, 성자는 하나님의 본체, 성신은 하나님의 본영이라고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보고서에서는 이 사실을 들어 이씨의 삼위일체론이 양태론이라고 보았으나, 이것은 오히려 양태론을 부정하기 위하여 고안한 용어로 이해된다. 본질, 본체, 본영이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함으로써 성부, 성자, 성령의 상호간의 구별을 시도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용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김기동 씨와의 연관에 대한 증거는 되겠지만, 오히려 양태론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한편 이명범씨는 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명하고 있다.

 

본인은 당시에 초보적 단계의 평신도로서 기독교 삼위일체 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본인의 잘못은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본인이 어머니도 되고, 딸도 되고, 아내도 된다’는 예를 든 것이었습니다. 이 말이 당시에는 양태론이라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이런 예들이 양태론이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본인의 위의 말은 예수 이름을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하는 내용의 말을 했는데, 신학적인 소양이 없어서 평신도 시절의 표현의 미숙함을 인정합니다. 지금은 이런 표현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수차례 언급했듯이 본인의 1984년 이전 자료는 폐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본질(本質)”, “본체(本體)”, 그리고 “본영(本靈)”이라고 말하는 것은 삼위일체의 한 표현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본”은 본질상 한 하나님(One Essence)을 말하고, “질,체,영”은 각각 인격이 있음을 말하는 줄로 생각하여 한문의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위와 같은 나용화 박사의 지적에 따라서 본인은 다시는 이런 신학적으로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정통적인 교회의 삼위일체 교리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장 제3항의 삼위일체교리와 이에 대한 나용화 박사의 해설을 따르겠습니다.

이상의 이명범 씨 본인의 해명을 요약하면,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그녀는 초기에 신학적 부족과 용어 사용의 미숙으로 양태론적으로 비판 받았으나, 이후에 그것을 깨닫고 정통적 삼위일체론을 믿고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 신문을 통해서도 웨스트민스터 삼위일체 신앙고백과 이종성박사의 삼위일체론을 믿고 따른다고 고백하였다.

삼위일체론은 이론적으로 서술하기가 매우 어려운 교리에 속한다. 전통적 삼위일체론은 성부, 성자, 성령이 본질로는 한 분 하나님이지만 위격으로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하나이며 서로 다른지에 대해서는 통일된 교리가 없다. 이씨가 신학적 미숙으로 인하여 양태론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였음을 스스로 인정하였다. 또 이씨는 처음부터 삼위일체론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다만 그 설명을 특이하게 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으로 비판받을 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래서 그 표현을 수정하고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으로 확실히 돌아왔다고 고백하였다는 점을 의미 있게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3. 창조론의 문제점

‘보고서’는 이씨의 창조론에 대해서 4가지 문제를 지적하였다. 첫째는 하나님의 온전한 창조가 무너진다. 둘째는 인간의 타락 시점이 선악과를 먹을 때 이전이다. 셋째는 하나님이 마귀를 멸하려고 인간을 창조했다. 넷째, 선악과가 인간을 망하게 한 것 같지만 오히려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이 4가지에 대하여 하나씩 살펴보자.

1) 온전한 창조(무로부터의 창조)

‘보고서’에서는 “이씨의 창조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온전한 창조가 무너진다”고 하였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씨는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 유가 나온 것이라 가르치면서도 창세기 1:1을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라고 해석하고, 1:2의 상태는 눈에 볼 수 없는 안개상태, 즉 원자상태로 창조하였는데 종말에 심판을 받고 나면 이 땅이 원자상태로 돌아간다고 하여(‘창세기’ 강의 테이프 1984년 4월 30일), 결국 1:2의 원자상태는 원래 존재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보고서’가 말하는 온전한 창조는 무에서의 창조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그러므로 이씨가 무에서의 창조를 부정했다고 보는 것이다.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 즉 “결국 ... 원래 존재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는 이씨의 주장이 아니라 이씨의 창조론에 대한 ‘보고서’의 해석이다. 창세기 1:2에 대한 이씨의 말이 무에서의 창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되었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려면 근거를 좀 더 제시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씨의 해명을 들어보아야 할 대목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이씨는 무에서의 창조를 주장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즉 이씨는 무에서의 창조를 주장한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부정하는듯이 여겨지는 강의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자로서는 이씨의 주장이 무엇인지를 좀 더 명확히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랬다면 좀 더 정확한 사실을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보고서(2015)’는 위 해명을 인정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창조론에 있어서, 이명범은 문제의 발언이 담긴 강의테이프는 신학적 소양의 부족을 스스로 인정하고 전부 폐기시켰다고 하였고 천지창조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됨을 믿는다고 하였다(이명범. <나의 신앙 나의 고백>, 72-3). 또 창세기 1:2에 대한 초기의 설명이 원래, 곧 창조 전에 원자 상태가 있었던 것처럼 오해된 점이 있었으나, 무로부터의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한 것으로 보아야만 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30여 년 전의 문제의 강의테이프를 자진 폐기시켰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한 점, 그리고 현재는 정통적 창조론을 고백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창조론에서 이단성을 더 이상 지적할 수는 없다고 판단된다.

 

2) 죄의 기원

‘보고서’는 또 이씨가 “인간의 타락은 선악과를 먹을 때가 아니라 그 전이라고 한다”고 비판하였다. “이씨는 죄의 기원이 선악과를 먹을 때 시작된 것이 아니고 하와가 뱀과 대화할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즉 이씨는 주인인 인간이 뱀과 같은 종과 대화한 것 자체가 타락이라는 것이다(1984년 6월 11일 테이프).”

이 비판은 일리가 있다. 인간이 단순히 뱀과 대화한 것 자체를 타락이라고 했다면 그것은 성경의 교훈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나님도 사탄과 대화한 내용이 성경에 여러 군데 나온다는 사실로도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보고서(2015)’는 다음과 같은 연구결과를 내어 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은 것이 타락이라고 말함으로써 타락의 개념을 명료하게 정의한 후, 마귀와의 대화가 위험하다는 뜻으로 타락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가르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굳이 이단적인 교리로 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3) 인간 창조의 목적

이씨의 창조론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마귀를 멸하려고 인간을 창조했다고 한다”는 부분이다. ‘보고서’는 “하나님께서 사단과 싸우면 똑같은 존재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사단을 멸하려고 인간을 창조했으며, 그러기 때문에 성경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는 사단의 일을 해결해야만 성서가 이해된다고 하였는데(1984년 6월 11일 테이프), 이는 곧 베뢰아의 사상 그대로이다”라고 하였다. 이 부분을 살펴보자.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사단을 멸하려고 한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이 이단적 교리인가 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만일 사단을 멸하려는 한 가지 목적만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면 이단적이라 할 만하다. 성경의 주제인 인간의 구원이 간과되거나 변두리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창조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사단을 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신학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주장이다. 이씨의 경우가 어디에 해당되는지 좀 더 살펴보고 판단했어야 할 것이다. ‘보고서’는 이씨의 위 주장을 “베뢰아의 사상 그대로”라고 하면서 다시 김기동 씨와 결부시켰는데, 이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바람직하지 않다. ‘보고서(2015)’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인간 창조의 목적에 있어서, 하나님은 마귀를 멸하려고 인간을 창조하신 것으로 가르쳤다고 비판을 받았으나, 이명범씨는 그렇게 가르친 기억이 없다고 주장한다(이명범, <나의 신앙 나의 고백>, 74). 또 설사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단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창조 목적에 관한 다양한 견해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견해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였다는 견해 등과 상충되는 것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4) 선악과에 대한 재해석

‘보고서’에서는 이씨의 선악과에 대한 해석을 인간창조 및 기독론과 연관시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선악과가 인간을 망하게 한 것 같지만 오히려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준 것이라고 한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는 말은(‘창세기’ 강의테이프, 1984년 6월 18일) 하나님께서 사단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단을 멸망시키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수 있는 것은 인간이 타락을 해야 하니 결국 선악과는 먹어야 하고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단을 멸하러 오신 것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보고서’에 의하면, 이씨의 주장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단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창조하셨다, 사단의 멸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위해서는 인간이 타락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선악과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선악과는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씨의 주장이 이와 같이 명시적으로 제시되어 있다면 성경적인 올바른 해석이라 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씨의 사상에 대한 ‘보고서’의 해석이므로 실제로 이씨가 이렇게 주장하고 가르쳤는지는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한편 창조론에 대한 ‘보고서’의 정죄 부분에 대하여 이명범 씨의 해명은 다음과 같다.

 

1984년 자료는 전부 폐기 처분되었으므로 지적한 테이프는 없습니다.

본인은 “하나님이 마귀를 멸하려고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한다”라고 한 기억이 없습니다.

본인은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먹지 말라고 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인간이 따 먹음으로 타락했음을 부인하거나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4. 인간관의 문제점

‘보고서’는 이씨의 인간관의 문제점을 3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첫째, 영에는 인격적 직능이 없다. 둘째,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육체 구원만을 위한 것이다. 셋째, 김기동 씨의 이중아담론과 같은 것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1) 영에 대한 견해

‘보고서’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씨가 사람은 육과 혼과 영으로 되어 있다는 삼분설을 바탕으로 혼에만 지, 정, 의의 인격이 있다고 한 것은(이명범, 경건생활을 위한 출발, pp. 9-11; 1984년 5월 28일 테이프) 역시 김기동 씨의 사상으로 김기동 씨가 영은 인격이 아니라 항구적 가치를 가진 존재라고 한 것과 같은 것으로(김기동, 마귀론 상, p. 80., 마귀론 하, p. 62), 모든 인격적 기능은 혼에 있고 영은 단지 신과 교제하는 능력이라고 언어만 바꾸었으나(믿음 생활을 위한 출발, p. 48, p. 50) 역시 김기동씨 사상이다.”

이씨의 사상을 김기동 씨와 같은 것이라 하여 비판하였으나, 앞에서 지적했듯이 어떤 일부 사상이 김기동 씨와 같다고 하여 이단이라 할 수는 없다. 그 대신 삼분설적 입장에서 혼에만 인격이 있다고 한 것이 이단인지 아닌지 물어야 할 것이다. 삼분설은 기독교 신학에서 주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단으로 규정할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씨가 삼분설적 입장에서 인격의 처소를 혼에 둔 것은 신학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단, 영에는 인격적 직능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증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범씨의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을 보자.

 

“영은 인격이 아니라 항구적 가치를 가진 존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 말을 본인은 한 적이 없으며, 이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릅니다. 이 말은 000 목사의 조작된 말입니다. 인간의 영이 인격이 아니면 인간이 유령이란 말인가요?

 

이 해명에 의하면 ‘보고서’는 이명범이 실제로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주장한 것이 된다. 이명범의 책을 확인한 결과 ‘보고서’의 내용은 사실과 달랐다. 유감스럽게도 당시의 총회 이대위는 기본적인 사실(fact) 확인에서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2) 십자가 죽음의 목적

‘보고서’는 이씨의 사상에 의하면,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인간의 육체 구원만을 위한 것이 된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확실한 이단이라 판단할 수 있다. 구원론적으로 심각한 오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씨는 하나님께서 뱀에게 흙을 먹으라고 저주하신 것은 사단이 인간의 지상 영역(earth part)만 지배할 수 있다는 뜻이고, 사람의 영은 건드릴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에게도 흙으로 돌아가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했는데(1984년 6월 18일 테이프), 이는 결국 범죄한 인간의 영 속에는 사단이 못 들어왔으니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사단의 지배 아래 들어간 흙인 육체만을 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인용한 문장에서 전반부는 이씨의 주장이고, 후반부(‘이는’ 이후)는 그에 대한 ‘보고서’의 해석으로 확인된다. 전반부의 이씨의 주장은 성경주석상의 비판이 많이 있을 수 있는 부분으로 생각되지만, 그것만으로 이단이라 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반면에 후반부에 나오는 ‘보고서’의 해석대로라면, 즉 그 해석이 이씨의 사상이라면, 이씨의 사상은 이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보고서’의 해석일 뿐이고 이씨가 이 해석에 동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씨에게 십자가의 죽음이 인간의 육체 구원만을 위한 것이라고 인정하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만약 당사자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했다고 반박하며 이단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명범씨는 이에 대해 어떻게 해명하는가?

 

예장 통합의 “결국 범죄한 인간의 영 속에는 사탄이 못들어왔으니 영은 타락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사탄의 지배 아래 들어간 육체만을 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에 대한 해명은 본인은 인간의 타락이 영혼과 육의 전인적이고 전적인 타락을 믿으며, 본인의 강의 내용에 문제가 된 부분은 1984년도에 전부 폐기되었고 본인의 강의 내용이 오래되어서 자세히 말할 수는 없으나, 기억나는 골자는 타락한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은 흙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며, 즉 죽는다는 이야기이며, 인간 타락을 유도한 뱀에게도 형벌로 종신토록 흙을 먹고 살라고 하신 것을 강조하는 의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인은 인간의 타락은 전적이고 통전적인 것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인간의 어느 한 부분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 혼, 육, 전인적인 것임을 믿습니다.

 

이명범씨는 인간의 영혼을 포함한 전적인 타락과 구원을 믿는다고 분명하게 고백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이중아담론에 대해서

‘보고서’는 다시 이씨를 김기동 씨와 연관시킨다. 곧 이씨의 인간창조론이 김기동 씨의 이중아담론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씨는 창세기 1장의 인간에게는 육과 혼(인격)만 있고 창세기 2장의 인간에게는 영이 주어졌다고 하는 말은(믿음생활을 위한 출발, p. 45) 김기동 씨가 1장의 인간은 혼과 몸만 가진 동물의 자웅을 칭하는 것이요, 2장의 인간은 그 중에 뽑힌 개화된 인간, 즉 영을 가진 존재라고 주장하는(김기동, 마귀론 상, p. 79) 소위 이중아담론과 같은 것이다.”

김기동 씨와 같든 다르든 창세기 1장의 인간과 2장의 인간을 다르게 이해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지지받을 수 없다. 소위 이중아담론은 오류다. 그러므로 이씨가 이런 주장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이명범 씨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본인은 이중아담론을 신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저서, 『믿음 생활을 위한 출발』, 45쪽에는 예장통합이 지적한 내용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히며, 이 내용은 이대위가 조작한 내용입니다. 본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말하면서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라는 말씀을 설명했을 뿐입니다. 예장통합 이대위가 조작된 내용으로 본인을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인은 소위 ‘이중아담론’은 잘못된 성경 해석임을 알고 있고,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명범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총회는 이명범 씨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책망받을 수밖에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명범 씨를 이중아담론을 신봉하는 사람으로 비판한 것은 무고에 해당하는 것으로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보고서(2015)’는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이중아담론에 대해서, 이명범씨의 책에 지적된 문구가 존재하지 않는다(이명범, <믿음생활의 출발>, 45). 또 본인이 이중아담론을 잘못된 성경해석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이명범, <나의신앙 나의 고백>, 85-87). 그러므로 이 부분은 원인무효에 해당되므로 문제로 삼을 수 없다.

5. 성경관의 문제점

‘보고서’는 이씨의 성경관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씨는 성경은 우리 영에 필요한 영의 양식이기 때문에 성경을 이성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여 성경을 반이성적으로, 그리고 신비주의적으로 이해한다.”

이씨가 ‘보고서’의 내용대로 성경을 반이성적으로, 신비주의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단이라 할만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성을 초월한 사건을 기록하지만 결코 반이성적인 것도 아니고, 신비를 지니고 있지만 모든 것을 신비주의적으로 이해하면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연 이명범은 반이성적, 신비주의적 성경관을 가진 사람인가? 이것은 다소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 되겠지만, 필자는 그렇게 보기 힘들다고 본다. ‘보고서(2015)’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지적된 이명범씨의 저서(<믿음생활의 출발>, 9-34)를 살펴본 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성의 한계에 대하여 서술한 것이지, 이성의 무용이나 신비주의적 해석을 가르친 것으로는 볼 수 없다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반이성적, 신비주의적 이해라는 비판은 적절한 비판으로 보여지지 않거니와, 그런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그 정도에 있어서 이단으로 규정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고 판단된다.

6. 종합 및 연구결론

‘보고서’는 위와 같은 5가지 문제점에 근거하여 이명범 씨를 다음과 같이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이씨는 본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김기동 씨의 사상과 별 차이가 없는 극단적인 신비주의 형태의 이단이다. 그가 김기동식으로 축사행위를 하였던 것과 최근에는 ‘렘’ 집회시 고고춤을 방불할 춤판을 남녀가 벌이고 있다는 점은 염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연구결론은 앞에서 제항목을 다 살펴본 것처럼, 동의하기 어렵다. 김기동 씨는 1992년에 이명범 씨와 동시에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므로 ‘본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김기동씨’라는 표현을 사용하려면 1992년의 총회 이전에 김기동 씨를 이단으로 규정했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표현이 이 ‘보고서’에 들어가 있다는 것은 이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들이 총회 보고 이전에 김기동 씨를 이미 이단으로 결정하였다는 의심이 든다.

또 ‘김기동 씨의 사상과 별 차이가 없는 극단적인 신비주의 형태의 이단’이라고 규정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연구서’의 연구결론에 이르기 전에 신비주의란 말 자체가 단 한 번 나올 뿐이며, 더구나 ‘극단적’이란 말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김기동식 축사행위나 춤판을 운운하는 것은 연구서 본문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으므로, 그런 것을 결론에 담는 것도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축사행위나 춤추는 것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 자체가 이단으로 규정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고서(2015)’의 연구결론은 다음과 같다.

 

위와 같은 연구 결과 이명범씨와 레마선교원을 이단으로 결의한 1992년도의 결의는 2015년 현재의 시점에서는 더 이상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여겨진다. 당시에 평신도로써 신학적으로 미숙한 점이 있었음을 본인이 인정했다는 것과 최근의 수많은 관련 자료를 살펴볼 때, 더 이상 이단으로 규정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단 결의는 해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IV. 평가 및 제언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신앙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 나의 잣대로 남의 신앙을 함부로 비하하고 정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진리와 이단의 문제에 있어서는 교단 총회조차도 매우 신중해야 한다.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에 따라 최대한의 조심성을 가지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1992년의 이명범 씨 이단규정에 있어서 눈에 띄는 문제는, 1) 사실 확인에 있어서 오류가 있다. 2) 당시에 이단으로 확정되지 않은 김기동 씨와 연관이 있다 하여 이단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결론으로 몰아간 정황이 있다. 3) 사소한 교리적 차이를 지나치게 부각시켰다. 4) 윤리적으로 접근한 정황이 있다. 5) 형평성에 있어서 균형을 잃은 정황이 있다. 6) 살리기 보다는 정죄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1992년의 이명범 씨에 대한 이단 규정은 여러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더구나 그 이후 이명범 씨는 이단성이 의심될 만한 점들에 대하여 빠짐없이 점검하고 해소하는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전의 과오가 담긴 테이프들을 다 폐기한 것이나, 사실무근인 것과 오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명하였고, 신학적 지식의 일천함으로 인한 표현의 미숙에 대해서는 신학수업을 통하여 교정하고, 새롭게 정통적인 신앙을 고백하는 등 보편적인 교회의 인정을 받기 위하여 철저히 노력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1992년의 경우는 차치하고서라도, 2016년 현재 이명범 씨에 대한 이단규정은 더 이상 보존할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해지하는 것이 옳다고 사료된다.

차제에 이단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1) 사실과 드러난 증거에 입각하여 판단할 뿐, 주관적 추론에 근거하여 판단해서는 안 된다. 2) 정치적, 윤리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고, 오직 성경과 교회의 정통적인 교리에 입각해야 한다. 3) 사소한 교리의 차이에 집착하기 보다는 구원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중추적인 교리에서 보편 교회가 용인할 수 없는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4) 비록 어느 정도 문제가 드러난다 할지라도 율법적으로 정죄하고 죽이기보다는 복음적으로 살리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황규학 논설위원  finland61@hanmail.net

<저작권자 © 뉴스타겟,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황규학 논설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