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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누가 지키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다. 여기에서 헌법 제1조의 핵심어는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주권’, ‘국민’, ‘권력’이다. 제1조의 1항에서 대한민국과 민주공화국은 같은 의미로 기술되어 있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와 공화국의 합성어다. ‘공화국’ 앞에는 여러 말이 붙을 수 있다. 공화국의 종류는 다양하다. 공화국은 귀족정이나 군주정과도 결합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알기 위해서는 민주공화국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정체성’에서 우리와 맞서고 있는 북한도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라고 한다. 그래서 헌법 전문에는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라고 하였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속에는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자유의 경제적 확장인 시장경제에 대한 존중이 포함된다. 따라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고 지키려는 의지가 없는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할 수 없고, 대한민국의 영토를 지키려는 결의가 없는 사람도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국민의 자격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외치고 있어 염려스럽다. 우리의 이렇게 딱한 처지를 동서대 교수인 브라이언 마이어스(53. 최보식이 만난 사람, “‘북한의 프로파간다' 연구해온 美國人… 브라이언 마이어스 교수”, 『조선일보』2016년 10월 24일)가 적절하게 설명하였다.

이념적 정체성이 없는 국기와 국기

그는 북한의 문화와 프로파간다(선전, 선동)를 연구해 온 미국인이다. 그는 국내 언론매체보다 외국 언론에 더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몇 년 전에 그는 미국에서 『가장 순결한 민족, The Cleanest Race: How North Koreans See Themselves and Why It Matters 』을 출간했다. 이책에서 말하는 ‘가장 순결한 민족’은 북한 사람들을 말한다. 외부인이 북한 사람들을 그렇게 본다는 것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남한 사람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지만, 북한 사람들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이어스 교수는 최보식과의 대담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한국은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공화국(共和國)입니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이런 상황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공화국(북한)과 경쟁 중이지 않습니까. 북한은 민족주의가 강하면서도 자신의 공화국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우월해도 체제 경쟁에서는 이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한 마이어스 교수의 이력은 흥미롭다. 그는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 고향인 버뮤다(영국령)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남아공으로 이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독일로 건너가 대학을 다녔다. 1984년 겨울 미 8군에 군목(대령)으로 근무하던 아버지를 찾아오면서 한국과 인연이 닿았다. 한글 글자체에 흠뻑 빠져 서울로 와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설야(韓雪野·1900~1976년 월북 작가) 연구”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설야는 북한에서 김일성 개인 우상화 작업을 추진한 사람이다. 그는 한설야 연구를 통해 북한은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라 ‘극우 이데올로기 체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북한을 공산주의 체제로 보면 북핵문제에 대해서도 정확한 대응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은 개정헌법에서 '공산주의'란 용어를 모두 뺐습니다. 공식적으로 자신의 체제를 ‘선군(先軍)주의’라고 했습니다.

이는 1930년대 일제와 나치 독일의 군국주의와 맥을 같이하는 겁니다. 북한이 ‘공산주의’라면 경제적 대가로 핵무기 감축 협상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선군’을 내세우는 극우 체제는 그런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마이어스는 또한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한국에 뒤처졌습니다. 이런 북한 정권은 핵무기와 군사 강국을 내세워 체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만약 핵을 포기하면 '남한의 2류(流)'로 전락할 수 밖에 없고, 이는 북한 정권의 정치적 자살(自殺)을 의미합니다.”라고 설명한다. 지속적인 국제 사회의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 경제가 파탄이 나도 핵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다.

그는 “민심을 잡기 위해 김정은의 도발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극우 정권은 감시 체제의 공산 정권과 달리 억압만 할 수 없습니다. 국민을 열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핵과 미사일 실험만 거듭하면 주민들의 관심이 식을 수 있습니다. 그때쯤 도발을 생각하게 됩니다. 문제를 계속 일으켜야 민심을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이 ‘억압된 공산주의’ 정권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겁니다.”라고 했다.

그는 북한을 그렇게 억압적인 국가로 보지 않는다. 북한을 방문해 보니 유신(維新)과 5공 시절의 한국을 연상하게 했다고 했다. 그는 금강산과 개성 관광을 했고, 그 뒤 2011년 미국 NGO 직원과 함께 평양·사리원·원산·남포를 여행했는데 ‘극장’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인위적인 모습도 많았지만, 과거 동독처럼 ‘국가 수용소’ 같지는 않았다고 했다. 과거 동독과 달리 북한은 허술했다는 것이다. 장마당에서 단속 경찰과 아줌마가 싸우는 장면이 찍힌 비디오도 있는데 공산 감시 체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자기 정권을 무시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피격 때 ‘이제 북한은 끝장’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미국 같았으면 엄청난 보복을 했겠지만, 남한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그때 한국이 군사적 우월함을 보여줬으면 김정일 정권은 흔들렸을지 모릅니다. 선군주의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믿음이 깨졌을 테니까요.”라고 했다. ‘선군’을 내세운 북한이 형편없이 공격을 당하면 김정일 정권이 흔들렸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김정일은 남한은 북한이 무서워 공격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는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발생 뒤 뉴욕타임스에 “한국인들이 국가보다는 민족 개념에 더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는 글을 썼다. “한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민족이지 국가가 아닙니다. 여중생이 미군 탱크에 치여 숨진 사고로 ‘반미 촛불시위’(2002년) 같은 이벤트를 목격한 뒤부터 그걸 확실히 느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독도 문제에선 분노하면서, 북한 정권의 만행에 대해선 같은 민족으로 여겨 그렇게 분노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한 국가의 정통성은 전통이 아니라 이념에서 온다는 것 사실을 강조한다. 북한의 국기에는 사회주의 이념이 담겨 있지만, 태극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애국가도 공화국의 가치를 담지 않고 단일민족 정서만 담았다고 분석한다. 남한은 북한과 이념적으로 체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의식이 약했다는 것이다.

그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절과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일 혹은 건국절, 어느 쪽이 우선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1945년은 일본의 항복(降伏)에 불과했고, 그 뒤 미국이 왔습니다. 나쁜 놈이 가고 좀 더 나은 사람이 왔지만… 완전히 해방됐다고 볼 수 없는 겁니다. 1948년 정부수립이 자주성을 얻은 날입니다.”라고 했다.

나아가 이승만의 친일(親日) 정부 수립으로 분단이 고착됐다는 좌파진영의 비판에 대해서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은 노예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공화국은 단두대에 피를 묻히고 탄생했습니다. 도덕주의로만 생각하지 말고 그 뒤 대한민국이 구현해온 가치에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자신의 공화국에 대한 프라이드가 없는 게 저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공화국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면 이상하게 취급받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그는 한국인은 ‘공화국의 가치에 대해 자긍심이 없다’고 단정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말한다. “한국에 오자마자 일주일 만에 9·11 사태(2001년)가 터졌어요. 내가 직접 두들겨 맞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연평도 피격 사건(2010년)이 났을 때 한 서방 기자가 노래방에 들어가는 한국 대학생들을 취재했습니다. 학생들은 웃으면서 ‘연평도는 여기서 멀잖아요’라고 답변하더군요. 이런 나라를 왜 미군이 와서 지켜줘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권에 대한 불만과 반대가 공화국의 가치에 대한 자긍심을 갖지 못하게 요인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한국 사람들은 둘을 동일시합니다. 나쁜 정권이 집권하고 있기 때문에 공화국을 좋아할 수 없다는 거죠. 정권 위에 국가가 있는 겁니다. 나치를 경험한 서독 사람들은 ‘국가’를 앞세우는 데 거부감을 갖고 있었지만, 자신의 민주적 가치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는 좌파·우파와 무관한 겁니다. 이런 공화국의 가치가 동독에 투영됐고, 그것이 서독에 대한 동독 주민들의 반감을 줄였고 동독을 민주화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라고 했다.

나아가 그는 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위는 판명된 것이고, 대부분 북한 주민들은 한국행(行) 열망을 갖고 있을 겁니다.”라는 대담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교육과 선전·선동에 의한 것이든 체제에 대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는 쪽은 북한입니다. 북한에는 김일성 부자 동상만 3만 개쯤 됩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동상이 공공장소에 몇 개 있습니까. 서울 중심인 광화문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은 있습니다. 공화국의 역사와 가치에 관한 것은 없습니다. 자신의 공화국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면 북한을 적극적으로 이끌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최보식과 브라이언 마이어스의 대담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북한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우리의 통념을 뛰어 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의 통념이 형성되었고, 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우리의 통념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항상 북한에 대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다. 북한 체제는 비이성적으로(편집자 註 : 북한의 실권자들이 비이성적으로 사고한다는 생각이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다. 우리에게는 비이성적인 것으로 보이는 행동들이 실제로는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계산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사고하기 때문에 언제 쳐 내려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면서도, 전쟁이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도발에 대해서 즉각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공포 때문이든 평화 때문이든 도발에 대한 즉각적 대응에 대해서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은 회의적이다. 동맹국인 미국이 북한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북핵을 제거하기 위해 북한을 공격해야 한다고 하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위험한 패권주의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북한을 공격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거리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를 외쳤다. 이 말은 마음에 들지 않는 정권을 공격하는 언어적 무기로 사용되었다. 민주공화국을 정권이 사유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민주공화국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민주공화국을 외친 사람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민주공화국’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북핵을 제거해야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하고, 안보의식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민주공화국’의 위기를 걱정하면 ‘색깔 논쟁’을 유발한다고 몰아붙인다.

‘민주공화국’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전쟁광’이나 ‘보수꼴통’으로 낙인찍힌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왜 ‘민주공화국’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결의에 찬 사람들이 낙인찍히는 존재가 되었는가? 왜 우리는 경제 성장에서 승리했지만, 이념 전쟁에서 밀리게 되었는가?

이제 우리는 이런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지면서, “경제적 자본주의에 적대적인 현 시류를 돌려 세우기 위해, 자유주의 지식인은 반드시 선동가라야 합니다. 세계의 인구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아니고서는 이들을 다 먹여 살릴 수 없습니다.”라고 한 하이에크의 고언을 되새겨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뒤흔드는 세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자유주의자들이 나서서 이를 막지 못하면, 남한이 북한처럼 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안보위기와 경제위기가 겹친 현 상황에서 자유주의자는 분발해야 한다. 이 두 개를 지탱하는 기둥은 자유주의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joongsop@kangwon.ac.kr) /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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