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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열전 18] 모사드의 이집트산 다이아몬드, 아슈라프 마르완(下)

마르완이 언제부터 모사드의 비밀공작원이 됐는지는 이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욤 키푸르전의 정보전 실패를 다룬 저서 '감시기관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의 저자인 유리 바르 조셉은 지난 1970년께로 추정했다.

정보 전문가로 하이파대학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최신작 '천사: 이스라엘을 구한 이집트 스파이'에서 첫 접촉 시기를 이쯤으로 기술했다.

마르완은 런던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정보 제공 의사를 밝혔다. 이에 그를 접촉한 모사드는 최고 수준으로 예우했다. 예비역 소장 출신으로 당시 모사드 국장이던 즈비 자미르는 런던 등에서 비밀리에 암호명이 '천사'인 마르완을 수시로 만나 중요 정보를 직접 전달받았다고 조셉 교수는 이 책에서 설명했다.

그러나 그가 조국을 저버리고 이스라엘을 위해 스파이 행각을 벌인지 정확한 동기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 "이스라엘이 보유한 최고의 스파이"…사다트의 사적 대화 내용까지 입수

이집트는 흔히 '6일 전쟁'으로 잘 알려진 제3차 중동전쟁의 설욕에 절치부심했다. 이는 사다트도 마찬가지였다. 훗날 자미르 국장이 평가한 것처럼 "이스라엘이 보유한 최고의 스파이"로서 마르완이 진가를 발휘한 것은 설욕전 관련 최고급 정보였다.

마르완은 승진을 거듭하면서 최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이 덕택에 그는 전쟁 수행 계획, 군사 훈련과 소련 등 외국과의 무기 거래 내용, 이집트군의 전투서열 등 관련 정보를 소상하게 파악했다.

심지어 사다트 대통령이 아랍권 정상들과의 나눈 사적 대화와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의 회담 내용도 입수해 모사드 측에 전달했다.

▲사다트를 맞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오른쪽) ⓒ위키피디아

이런 정보는 골다 메이어 총리, 모세 다얀 국방장관, 이스라엘군 총참모부 등 이스라엘 수뇌부에 전달됐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전달된 정보로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속속들이 파악했다.

◇ "전쟁이 임박했으니 대비하세요" …이집트의 침공 정보 제공

사다트는 복수의 화신이었다. 숙적 이스라엘에 뺏긴 영토를 회복하고 복수를 하는 데 가장 필요한 장비는 장거리 전폭기와 스커드 지대지미사일이었다. 이런 장비를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이미 이스라엘의 우세한 공군력을 경험한 마당에 두 장비의 확보는 필수불가결했다.

그러나 소련으로부터의 관련 장비 공급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성마른 사다트는 1972년 10월 장거리 전폭기와 미사일 없이 공격하기로 했다. 마르완은 당연히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

그는 이어 이집트가 같은 해 5월 중순께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군은 대비태세를 갖췄다. 그러나 마르완의 경고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보국(아만)을 포함한 이스라엘군은 이집트의 공격 가능성이 현실성이 희박한 것으로 오판했다. 이런 오판을 결국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이집트군의 스커드 지대지미사일 ⓒ위키피디아

◇ 현실로 드러난 마르완의 경고…사우디의 對美 원유금수 정보도 전달

이스라엘에 대한 이집트의 보복 공격 시점이 변경된 것은 마르완의 실책은 아니었다. 역시 이스라엘에 칼을 갈아온 시리아의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의 연기 요청 때문이었다. 6일 전쟁으로 골란고원을 뺏긴 시리아가 이를 탈환할 수 있을 정도의 군비를 갖출 때까지 늦춰줄 것을 간청해오자 사다트는 이를 받아들였다.

마르완은 이듬해인 1973년 8월경 자미르 국장에게 중요한 정보를 직접 설명했다. 사다트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파이잘 국왕과 만난 자리에서 같은 해 가을 시리아와 합동으로 이스라엘을 침공할 계획을 밝혔다는 정보였다. 파이잘 국왕도 이에 동조해 '최후의 무기'로 미국에 대한 원유 수출 금지 결정을 하겠다고 귀띔했다. 미국이 사우디로부터 도입한 원유를 정제해 이를 다시 이스라엘에 공급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으려면 금수 조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제4차 중동전쟁 발발 초기 수에즈운하를 건너는 이집트군 ⓒ위키피디아

이스라엘은 사우디가 미국에 대한 원유금수 조처를 할 것이라는 정보를 미국에 전달했다. 그러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를 일축했다.

◇ "내일 전쟁이 터집니다" …자만과 방심이 초래한 엄청난 재앙

이집트의 공격이 시작되기 45시간 전인 1973년 10월 4일 아침 일찍 마르완은 자신의 모사드 공작관으로 런던 대사관에 근무하는 요원에게 전화를 걸어 "비료 상담"건을 진행하자고 요청했다. 비료는 전쟁을 뜻하는 암호였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런던에서 긴급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마르완은 "전쟁이 내일 터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은 마르완의 이런 경고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군 정보국(아만)은 이집트가 전쟁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인 데다 공격할 특별한 동기가 없다는 이유로 경고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모사드 측이 워낙 강경해 기습공격 6시간 전에 이스라엘 정부는 총동원령을 발령했다.

그러나 자만과 방심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군은 초기 엄청난 패배를 맛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긴급 지원으로 이스라엘은 반격 기회를 확보, 전쟁을 다시 승리로 이끄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 암약과 의문의 죽음

마르완은 1998년까지 스파이로 계속 활동했다. 그의 신분이 드러난 것은 2002년 12월 이스라엘 역사학자인 아론 브레그만의 폭로를 통해서였다. 브레그만은 마르완이 이중간첩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바로 이스라엘 정보 실책을 초래한 엘리 자이라 전(前) 아만 국장이었다. 자신의 실책을 마르완에게 전가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전쟁 이후 런던에서 생활해온 마르완은 2007년 6월 27일 고층 아파트에서 실족해 사망했다. 그의 사인을 둘러싸고 암살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확한 사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김선한 기자

연합뉴스  sh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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