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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교단과 일사각오의 정신다수의 결의와 신앙....주기철목사는 한국에서 부활하지 않았다

지난번 예장통합교단 채영남목사의 사면선포철회와 용서대신 정죄를 선택한 예장통합교단의 총대들과 교수들이 한 행동은 한국 기독교 정신의 실종이자 치욕이었다. 회개한 자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성서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단이라도 교정하고 회개한다는 자세를 가지면 한국교회는 용서하고 동반자적인 자세를 갖고 함께 가야하는데 통합교단은 용서대신 정죄를 선택하고 말았다. 성서정신의 실종이었다. 이는 비단 이번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제시대 27차 총회는 일사각오보다 일생타협을 선택한 것이다.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대신 일생타협의 정신으로 사람들과의 타협을 시도했다. 27차 총회와 101회 총회는 유사한 면이 있다. 신에 대한 신앙보다는 인간에의 타협을 선택한 것이다. 

100회 총회장이었던 채영남 목사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출발했지만 정치적 행보로 인해서 마무리를 하지 못하였지만 그의 사면선포는 이단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였다. 그는 교회에서 어떤 영향력이 있어도 이단으로 누명받았던 사람들은 사면을 한다고 설교했지만 결국 호텔에서 증경총회장들앞에서 그리고 총대들 앞에서 입장을 후퇴하고 말았다.  


총대들은 채총회장을 단두대에 세워 목을 칠듯한 자세였고, 바리새인적 이단감별사들과 이를 옹호한 언론들은 채총회장의 무릎을 꿇리는데 성공하였다. 예장통합 교수들과 총대들은 용서대신 정죄를 선택함으로인해 그는 두려웠던 것이다. 교단의 파행을 막기위한 몸부림이었지만 성서의 정신과 신학의 파행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인해 통합교단의 총대들은 예수믿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계속 묶어두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로마인들이나 헬라인들이 사도바울처럼 예수믿는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감옥에 갇아놓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힘과 세, 여론을 갖고 예수믿는 자들을 이단으로 밀어부친 것이다.

주기철목사의 一死覺悟

이럴 때 주기철 목사가 한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현재 한국에는 주기철목사의 일사각오의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상영되었고, 주기철목사의 손자가 대형교회를 목회해도 주기철목사의 일사각오의 정신은 온 데 간 데 없고, 일생타협의 정신만 판을 치고 있다.

주기철목사는 1897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고 이광수와 류영모의 영향으로 1913년 오산학교에 입학하여 민족정신의 자각을 하게 되었고, 1916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안질과 가정형편사정으로 중도에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와 김익두목사로부터 은혜를 받고 목회의 길로 가기로 했던 것이다. 주목사는 1922년에 평양장로회 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하였고 1925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1926년 부산초량교회를 시작으로 1931년 마산 문창교회에서 목회를 하였고, 1936년 평양 산정현교회에 담임으로 부임하여 자유주의 신학 사조로 혼란한 교회를 수습하고 1938년 454평의 2층 벽돌 교회를 건축하였다.

같은 해 평양에서 신사참배 바람이 거세게 불 때 일사각오 정신으로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헌당 예배 직전(2월 8일)에 체포되어 5개월간 구속되었다. 석방된 지 두 달 뒤 9월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제28회 총회 직전 다시 체포되었다 풀려났고, 그 후 1939년 7월 경북 의성에서 체포되어 7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1940년 2월 평양으로 돌아온 주기철 목사는 순교적 자세로 신사참배 반대의 결연한 의지를 다졌고, 같은 해 4월, 그리고 7월에 구속되었다. 이렇게 다섯 차례의 구속과 석방을 거듭하는 동안 평양노회는 일제 강압에 못이겨 주기철 목사를 면직시켰고, 산정현교회는 폐쇄되었다. 또 주기철 목사는 불경죄,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10년 형을 선고받고 평양 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고문 후유증과 건강 악화로 1944년 4월 13일 보석되었다가 1주일 만인 4월 21일 숨을 거두었다.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공로 국민장을 받았고, 1968년 국립묘지에 묘지가 조성되었으며, 1983년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정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교단에서 면직된 이유는 교단의 총대들의 결의를 따르지 않은 것이고, 국가로부터 불경죄,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감옥에 갇힌 것이다. 당시 교단은 신사참배베결의를 하였지만 주기철 목사는 이를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 27차 총회회의록      ©법과 교회



예수는 다수의 유대교로부터는 신성모독죄를 붙여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직분이 면직되었고, 국가로부터는 로마에 대한 반역죄 혹은 로마인과 로마 통치자에 대한 불경죄로 처형된 것이다. 사도바울 역시 유대인들에게는 사도의 직분이 인정되지 않아 사실상 면직된 자로서 자칭 사도였고, 로마는 그를 로마 대화재 공범과 사교 그리스도교의 우두머리’ 라는 죄명으로 사형을 언도했다.

예수, 바울, 주기철목사의 일사각오

예수, 바울, 주기철목사의 공통점은 교단과 국가로부터 죄명을 얻어 처형을 당했던 것이다. 종교단체는 예수는 신성모독죄, 바울은 성전을 더럽힌 죄, 주기철목사는 총회 다수결의를 반대한 죄로 처벌받았고, 국가로부터는 반역죄, 반란죄, 대화재공범죄, 사교전파죄, 불경죄, 치안유지법으로 형을 받았던 것이다. 이처럼 실체와 상관없이 다수 인간들에 의해서 죄는 만들어져 붙여졌던 것이다. 이단 역시 실체적 내용과 상관없이 다수 종교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져 붙여진 것이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죄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형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이단죄는 소명기회도 주지않고 일방적으로 만들어지고, 사과와 회개를 해도 지속적으로 이단으로 구속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다수의 결의와 신앙

예수와 바울, 주기철의 일사각오 정신은 종교인 다수의 결의에 항의한 것이고, 자신들의 양심과 정신을 삶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말했던 것이다. 살아서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은 죽어서 말했던 것이다. 그들도 죄목이 있지만 모두 실체와 상관없이 종교단체의 다수의 결의와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붙여진 죄명이었다. 그러나 그 죄명은 그들의 육체는 구속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양심과 정신, 신앙은 구속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양심의 자유를 구속할 사람은 하나님이외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일사각오의 정신은 하나님 앞에서의 정신이었다. 사람 앞에서의 정신은 일생타협의 정신이다. 그러나 성서는 죽고자 하는 살 것이고 살고자 하는 이는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죄와 타협, 현실을 선택한 사람들은 육체는 살았지만 정신과 양심, 신앙은 죽은 것이고 사과와 회개를 선택한 사람들은 신앙과 양심이 산 사람들이다. 그리스도 앞에 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단의 문제는 대부분 내용과 상관없이 입혀진 것이고 덧붙여진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다수의 결의이다. 종교단체는 다수의 결의, 국가는 공권력으로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다.     

쟈크뿌엉의 철회와 번복

쟈크 뿌엉(Jacques Pouent)이라는 사람은 루터의 사상을 접하고, 그 책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다 체포되었다. 화형의 협박 앞에서 두려워 그는 자신의 생각들을 철회한다고 말하고, 7년 선고를 받고 감옥에 수감된다. 수감되어 있는 동안 그의 확신은 더욱 강력하게 되었고, 자신이 신앙을 철회한 어리석음에 대해 눈물과 애통함과 회개를 한다. 옛날에도 자신의 양심과 신앙을 지키면 다가오는 결과는 감옥형이나 사형이었다.


부끄럽게 사느니 죽음 택해

그는 1524년 10월 5일 기욤 파렐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하나님은 자신이 기록하게 하신 능력의 복음의 말씀이 세상 모든 곳에 펼쳐지기를 원하신다”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철회한 신앙을 다시 고백함으로 오늘날 파리 시청 광장에서 1526년 8월 28일에 화형을 당한다. 인간은 연약해서 자신의 결정을 철회하거나 뒤집을 수 있다. 그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죄는 뒬 수 없을지 모르지만 신앙은 아닌 것이다. 때에 따라서 신앙은 일사각오의 죽음을 요구하고 연약함은 타협에 복종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통합교단에도 쟈크 뿌엉이 필요할 때이다. 늦었지만 철회한 것을 다시 순교의 정신으로 고백하는 순간이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일생타협이 아니라 일사각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쟈크뿌엉이나 주기철목사처럼 말이다. 일생타협이 있는 한 주기철은 아직 한국에서 부활하지 않았다.

황규학 논설위원  finland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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