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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열전 17] '쿠바의 여왕,' 애나 몬테스(下)

몬테스가 쿠바 정보국의 비밀공작원으로 포섭된 것은 법무부를 관두기 1년 전인 1984년이었다.

중남미 좌익정권에 대한 동경과 노골적인 반미성향을 지닌 몬테스에 대한 '서비스'로 쿠바 정보국은 이듬해 3월 비밀 방문 기회를 제공했다. 스페인과 체코를 경유한 여정이었다. 몬테스와의 면담에서 쿠바 측은 기밀정보 접근 기회가 많은 연방정부 부처 자리를 구하도록 요구했다.

몬테스는 이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레이건 행정부의 부도덕성을 파헤치고 '억압받는' 중남미의 좌익국가를 구하려면 필요하다는 소신에서였다.

◇ DIA 정보분석관으로 취직

스페인어에 능숙하고 명문대학원의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가진 젊은 여성이 일할 자리는 정부 부처에 많았다. 1985년 9월 몬테스는 국방정보국(DIA)의 정보분석관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았다. DIA는 군사정보에 관한 한 CIA와 맞먹거나 능가했다. 스파이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DIA가 적격이었다.

DIA에 일자리를 구하자마자 몬테스는 절친한 친구인 아나 콜론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쿠바로의 비밀여행 사실까지 밝힌 처지에서 갑작스러운 관계 청산은 황당하기까지 했다고 콜론은 기억했다.

그러나 몬테스의 이런 행동은 당연했다.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콜론과 관계를 끊는 것이 활동에 용이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워싱턴 D.C의 볼링 공군기지 내에 있는 미 국방정보국(DIA) 전경[미 국방부 제공]

◇ 본격적인 간첩 행각…기밀문서를 빼돌리는 대신 머릿속에 기억

성실함과 꼼꼼함으로 몬테스는 곧 두각을 나타냈다. 그 덕택에 로버트 테닛 CIA 국장으로부터 우수 근무자에게 수는 상을 받기도 했다.

국방정보국(DIA) 근무 중에 찍힌 애나 몬테스의 상반신 사진[위키피디아 제공]

그의 스파이 기법은 독특했다. 대다수 스파이는 기밀문서를 밖으로 빼돌려 촬영하는 기법을 썼지만, 그는 달랐다. 기밀문서나 전자파일을 집으로 가져오는 대신 사무실에서 중요한 내용을 기억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퇴근해 집에서 머릿속에 든 중요한 내용을 랩톱에 수록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랩톱 수록 작업이 끝나면 다시 암호화된 디스크에 옮겨 넣었다. 그런 뒤 그는 단파 라디오를 통해 쿠바 공작관에게 어디서 전달해야 하는지 지시를 받았다. 몬테스는 공중전화로 호출기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접촉하기도 했다.

이런 공작 기법 덕분에 몬테스는 16년 동안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은 채 스파이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몬테스는 쿠바 정세에 대한 정확한 정세 판단과 예측으로 동료들보다 빨리 승진했다. 몬테스가 건넨 정보로 빌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에 대한 쿠바의 군사적 위협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오판하기도 했다.

질투심이 많은 DIA 내 동료들로부터 그는 "쿠바의 여왕"(Queen of Cuba)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 완벽한 스파이는 없는 법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은 몬테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DIA의 방첩 담당관인 스콧 카미클은 1996년부터 몬테스를 예의주시했다. 근무 태도가 이상하고 뭔가를 숨기는 것 같다는 예감이 들자 감시의 시선을 계속해 유지했다. 2000년 초 카미클은 FBI가 쿠바의 사주로 스파이 활동을 하는 '두더지'(mole)가 DIA 내에 있다는 정보에 따라 수사에 나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두더지가 특정 시기에 쿠바 관타나모의 미 해군기지를 찾았다는 사실도 전해 들은 카미클은 직감적으로 몬테스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FBI와 DIA 합동수사팀은 몬테스가 1996년에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한 이름없는 가게에서 특정 상표의 개인용 컴퓨터(PC)를 샀다는 사실도 파악했다. 용의자가 분명하다는 판단이 섰지만, 상대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와 현장 확보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합동수사팀은 전화 도청과 미행에 나섰다. 이를 통해 몬테스가 전화를 걸기 위해 워싱턴 D.C의 여러 공중전화 부스를 옮겨 다닌다는 것과 전화번호가 뉴욕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몬테스가 외출 중 한 가택수색에서는 쿠바 공작관과의 교신에 사용한 단파라디오가 발견됐다. 또 지갑 안에서는 난수표와 호출기 등이 나왔다.

2001년 9·11 사태 직후 몬테스는 아프가니스탄 내 공습 표적 분석팀원으로 선발됐다. 합동수사팀은 더 지체할 수 없었다. 체포를 늦추면 쿠바를 통해 공습 표적 기밀이 아프간의 탈레반 정부에 넘어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같은 달 21일 몬테스는 회의실로 불려와 합동수사팀에 체포됐다. 지난 16년 간의 스파이 행적이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정밀 수사 과정에서 몬테스는 쿠바에서 비밀공작원으로 일하는 4명의 미국 요원들의 신원 정보와 엘살바도르 내 미 육군 특전단(그린베레) 요원들의 행선지 정보 등을 쿠바에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구속기소 된 몬테스는 결국 징역 25년과 보호 관찰 5년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최후 진술에서 "쿠바에 대한 미정부의 정책은 잔혹하고 불평등하다고 판단했으며, 작은 섬나라인 쿠바가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도덕적인 책임감으로 활동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선한 기자

연합뉴스  sh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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