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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열전 14] "나치 석유산업을 마비시켜라"…에릭 에릭슨(上)

지난 1983년 1월 25일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 부고란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을 상대로 비밀공작 활동을 한 석유사업가 에릭 에릭슨이 92세의 나이로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고인이 나치 최고지도자 히틀러의 오른팔인 친위대(게슈타포) 최고 수장 하인리히 힘러의 신임을 얻어 전시 독일의 생명선인 합성유(synthetic oil) 관련 정보를 방대하게 수집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숨은 공헌자라는 설명이었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1944년 나치가 '야심작'으로 제작,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세계 최초의 제트 전투기 ME262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사라진 것도 에릭슨이 벌인 비밀공작과 관련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미국 명배우 윌리엄 홀든이 주연한 영화 '위장 반역자'.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스파이 에릭 에릭슨의 실제 활동을 다룬 작품이다[위키피디아 제공]

작가 알렉산더 클라인이 펴낸 '위장 반역자'(The Counterfeit Traitor)를 토대로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제작된 영화에서 소개된 에릭슨의 비밀 활약상은 지금도 첩보사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쟁 당시 그는 미국이 나치 독일 심장부에 심은 가장 소중한 비밀공작원이었기 때문이다.

◇ 타고난 스파이 '레드' 에릭슨…파란만장한 인생 역정

헝클어진 붉은색 머릿결 때문에 '레드'(red)라는 별명이 붙은 에릭슨은 1890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스웨덴 이민자 출신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여느 이민자처럼 에릭슨의 인생도 파란만장했다.

석유 노동자인 아버지를 따라 텍사스주 유전에서 뒹굴다 고학으로 동부 아이비리그 명문대의 하나인 코넬대를 다녔다. 일각에서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참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에릭슨은 34세 때인 1924년 스웨덴으로 거처를 옮겼다. 수도 스톡홀름에 정착한 그는 석유 관련 제품 회사를 설립해 최고 경영자가 됐다. 국적은 미국이지만 같은 핏줄인 에릭슨을 스웨덴 동료들은 좋아했다. 겉으로는 온순하고 낙관적인 성품을 가진 인물로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에릭슨은 도덕적 신념이 강한 편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공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독일의 석유생산시설. 미국은 스웨덴계 석유사업가 에릭 에릭슨을 잠입시켜 관련 정보를 수집해 폭격작전에 활용했다[위키피디아 제공]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을 상대로 혹독한 박해정책을 편다는 사실에 괴로웠지만, 에릭슨은 사업에 전념했다. 나치 정권은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안정적인 석유 확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중립국 스웨덴을 무대로 석유사업을 벌이는 미국 출신 에릭슨을 스웨덴 주재 독일대사관에 파견 나온나치 비밀경찰(SD) 소속 요원들이 그냥 지나칠 리 만무했다.

◇ 완벽한 기만책…나치의 환심을 사라

독일의 폴란드 침공(1939년)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에릭슨은 갑자기 반(反)유대주의자로 변모했다. 사업 관계 등으로 인연을 은 유대인 친구들과 하루아침에 절교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히틀러를 인류의 구원자로 찬양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식당에서 유대인을 만나면 목소리를 높여 비난하거나 심한 욕을 서슴지 않고 퍼부었다.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히틀러의 천재성에 대해서도 장광설을 늘어놓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처음 만난 사람들을 히틀러의 대형 초상화가 걸린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급기야 에릭슨의 스웨덴 지인들을 온갖 핑계를 대면서 자리를 먼저 뜨거나 아예 피했다. 당연히 이런 소문은 좁은 스톡홀름 재계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나치 독일의 친위대장관인 하인리히 힘러[위키피디아 제공]

이런 소문을 접한 SD 요원들은 에릭슨을 더욱 예의주시했다. 온순하고 조용한 성품의 그가 하루아침에 왜 급선회했는지 혹시 영국 정보기관의 사주에 의한 것이 아닌지 파악할 필요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에릭슨의 반유대, 친나치 언행은 강도가 높아졌다. 결국, SD는 에릭슨이 개인적인 소신에 따라 심경과 태도를 바꿨다고 판단하고 그에 대한 포섭에 나섰다. 더구나 전쟁 발발과 함께 전략 군수물자인 석유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시급한 상황에서 SD는 에릭슨을 끌어들이는 일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스웨덴 주재 SD 총책은 에릭슨에게 만남을 제의했다. 이 자리에서 에릭슨에게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고 나치 정권을 도울 수 있는 석유 협력사업에 관심이 있는지 가능성을 타진했다. 에릭슨은 기꺼이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두 사람은 이내 친해졌다. 그는 사업을 빨리 진행하려고 나치 정권의 최고위층을 소개해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SD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다. 에릭슨의 이런 움직임은 철저한 사전 공작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서울=연합뉴스) 김선한 기자

연합뉴스  sh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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