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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흐르는 강물처럼
▲박만재 회장.
자유총연맹 (UN.NGO 협력단체)
종교특별위원회 상임고문

이 세상 사노라면 부러질 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 새 학년 새 학기가 되면 등교하기 전에 새로운 각오로 연필을 가지련히 놓고 하나하나 칼로 깎으면서 자신을 가다듬던 소중한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연필 부러지는 것이야 다시 깎으면 되겠지만 세상 삶이 서툴고 힘겨워서 간혹 마음까지 뚝! 하고 부러지기도 합니다.

연필도 힘이 너무 들어가지 않게 결대로 깎고 다듬는 요령이 필요합니다.

나는 글을 아직도 연필로 쓰고 있습니다.

음악이 아름다운 것은 ‘쉼표’가 있기 때문이며, 그림이 좋은 것은 ‘여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약한 음을 칠 때라고 합니다.

신체의 근육도 단단한 것이 아니라 말랑말랑 한 것이 본래 건강한 근육입니다. 힘을 줘서 단단해진 근육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인생살이 또한 숨차고 힘들면 ‘삶의 쉼표’ 찍어 놓고 내 안을 살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를 더 많이 가져야 이것을 성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이룬 가장 큰 성공이 때로는 최악의 실수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기도 합니다.

어떻게?라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것만 아니라 왜?라는 가치관을 가져야 친숙성의 오류를 벗어나 하류 가치의 중독성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흐르는 강물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만 찾아 굽이굽이 흘러 오염된 실개천도 마다않고 스스로를 정화하면서 흘러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낮은 곳으로 내려가길 싫어합니다. 오로지 높은 곳만 바라보며 달려갑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자기 하고 생각이 다르거나 득이 되지 않은 사람은 멀리하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사람과의 관계가 좋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점점 외롭고 쓸쓸한 늙은이가 됩니다.

강이 백 개의 계곡을 다스리는 것은 오로지 계곡물보다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서로 다투지 않으면서 바다로 들어가지 않는가? 우리 정치하는 위정자들도 강물과 같이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면서 더 큰 ‘통합의 바다’에 이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저 강물을 보라! 백마강은 오늘도 쉬지 않고 도도히 흐르나니...

부여 고란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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